1. 이스라엘 건국과 제1차 중동전쟁: 민족주의와 영토 분쟁의 서막
20세기 초부터 유럽에서 확산된 시온주의는 유대인들의 역사적 고향인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국가를 건설하자는 움직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대인에 대한 국제적 동정 여론과 홀로코스트의 충격은 이스라엘 건국에 대한 지지를 확산시켰고, 1947년 유엔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인과 아랍인으로 분할하는 결의안을 채택한다. 이에 따라 1948년 5월, 이스라엘은 독립을 선언하지만, 곧바로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등 아랍 연합군의 침공을 받으며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전쟁은 초기 아랍 국가들의 우세로 보였지만, 유대인 무장조직 하가나를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은 효율적인 병참과 조직적 전투를 통해 영토를 방어하고 오히려 확장한다. 전쟁의 결과 이스라엘은 유엔이 정한 분할안보다 더 넓은 영토를 확보했으며, 약 70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난민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는 이후 수차례의 전쟁과 갈등의 기저가 되며 중동 정세를 영구히 뒤흔들게 된다.
2. 제2·3차 중동전쟁: 수에즈 위기와 6일 전쟁의 번개전
1956년 제2차 중동전쟁은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한 데서 촉발되었다. 이스라엘은 영국, 프랑스와 공조하여 이집트를 침공하였지만, 미국과 소련의 외교적 압력으로 인해 철군하게 된다. 이 사건은 서방 제국주의와 반제국주의의 충돌을 상징하며, 중동이 냉전의 주요 전장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된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즉 6일 전쟁은 이스라엘이 선제 공격을 통해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을 상대로 기습 작전을 전개하며 시작되었다. 단 6일 만에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 시나이 반도, 요르단강 서안, 동예루살렘, 골란고원을 점령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 군사력의 우수성을 입증했을 뿐 아니라, 점령지 문제를 둘러싼 장기적인 정치적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군사적으로 성공했지만, 팔레스타인과 아랍 국가들의 반감을 더욱 키우며 새로운 형태의 무장 저항을 부추기는 계기가 되었다.
3. 제4차 중동전쟁과 오일 쇼크: 기습과 석유를 무기로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즉 욤 키푸르 전쟁은 이집트와 시리아가 유대인의 최대 명절인 욤 키푸르를 노려 이스라엘을 기습하며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이집트가 시나이 반도에서, 시리아가 골란고원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스라엘은 곧 미군의 대규모 지원을 바탕으로 반격에 나서 전세를 뒤집는다. 그러나 이 전쟁의 가장 큰 파장은 군사적 결과가 아니라, 경제적 여파였다. 아랍 산유국들은 OPEC을 중심으로 석유 생산량을 줄이고 가격을 인상하면서 서방 국가들에 대한 ‘석유 무기화’를 시도했다. 이는 곧 1973년의 세계적 오일 쇼크로 이어지며, 글로벌 경제에 중대한 충격을 주었다. 이 전쟁은 중동의 전쟁이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닌 세계 에너지 질서와 직결되는 국제적 사안임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후 미국과 소련의 중동 개입이 더 직접적이고 정교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스라엘-아랍 간 전면전은 이후 점차 비정규전과 테러리즘, 대리전 양상으로 변화하게 된다.
4. 분쟁의 진화와 오늘날의 중동: 외교, 점령, 그리고 끝나지 않은 상흔
냉전 종식 이후에도 이스라엘과 아랍 세계 간의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1993년 체결된 오슬로 협정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이스라엘 간의 역사적인 합의로, 상호 인정과 자치정부 창설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이후에도 정착촌 건설, 가자 지구 봉쇄, 정체된 평화협상 등으로 분쟁은 지속되었다. 2000년대 들어 하마스와 같은 강경 세력이 부상하면서 가자 지구에서는 반복적인 무력 충돌이 벌어졌고, 이란은 시리아와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통해 반이스라엘 전략을 지속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개발을 실존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선제 타격을 포함한 강경한 안보 전략을 고수하고 있으며, 이란은 역내 영향력을 확대하며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다. 한편 미국과 아랍국가들 간의 새로운 외교 재편, 예를 들어 아브라함 협정과 같은 흐름도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팔레스타인 문제는 중동 전반의 갈등 구조에서 핵심 변수로 남아 있다. 이러한 복합적 분쟁은 단순한 군사 충돌을 넘어서 민족, 종교, 지정학, 에너지, 외교가 복합적으로 얽힌 현대 국제 정치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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